이달의 문화 포커스, 예초 정정순 작가
이달의 문화 포커스, 예초 정정순 작가
  • 서민준 기자
  • 승인 2013.06.20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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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큼 더 걸어야 산마루에 마음 두고 올까?”

“얼마큼 더 걸어야
산마루에 마음 두고 올까?”


예초 정정순

따사로운 햇살사이로 나의 사랑을 저울질해 본다.
사람으로 태어나 무엇으로 사는가? 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의 마음속에 무게를 느끼게 하는 것은, 친구 일 수도 당신 일수도 일과 돈 일수도 있다. 나를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밀한 사랑도 꿈꾸어 보았고 나의 꿈을 꼭 움켜쥐며 달리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다 어제 일, 이제 또 무엇으로 무료한 하루를 살까? 고심하며 참아내던 갈증 이제야 한 발자국씩 발을 때기 시작한다. 불을 지필 땔감을 잡았다. 성냥불을 그어 나무에 불이 타 들어가기 시작하듯 내 마음에 한 가닥 불이 붙기 시작한다. 너무 잦은 출판과 전시를 하면서 “이제는 좀 쉬어가면서 건강만을 챙겨야지” 하고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던 나 날, 그러나 더 무료하고 아프기만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관심어린 분의 권고로 다시 시집을 발간하게 되어 너무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15번째 시집출판, 16번째 개인전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산고의 고통을 맛보며 다산을 한 이 사람, 남들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산다고 부럽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나만큼 곤욕을 치르고 산고의 고통 속에 죽을 만큼 내 몸을 혹사시킨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 뿐인가 아들딸 5남매 다산을 해 다 출가를 시켰다. 남들은 나를 대하면서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숙연할 뿐이다.
어떻게 살았는가?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살았는가?
“열심히 남보다 달라야지” 시간을 저울질하면서 쉬는 날 안 놀고 잠도 줄이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동분서주(東奔西走) 무지 바쁜 사람이라고 낙인찍힐 만큼 바쁘게 살았다. 잠시라도 무료함을 못 견디며 물감으로 분단장시킨 그림들은 몇 십 번씩 매 만지고 분칠하여 싸인 마치고 옷 입혀 전시장에 선을 보이곤 했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도전 글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긴 시간 글에 매달려 쓰고 다듬어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면 딸인지 아들인지 책이 한권 태어났다. 급한 성격 탓에 서두르다보니 책이 나오자마자 반성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용감하게 책이 나오면 바로 사인하여 우체국까지 보내는 막을 수 없는 열정도 있었다. 몸을 안 사리고 작업을 하다 때때로 두통이 심해져 약을 먹고 잠들 때는 내일이 있을까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다. 무슨 일 이든 꼼꼼히 하는 사람은 느린 반면 꼼꼼하고, 많은 양의 일을 빠른 속도로 대충하면 허술하고 실수가 많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실수투성이 나는 많은 책을 작업 해 보냈지만 제대로 싸인 해 보낸 적이 몇 번인가? 하루에 못하면 그 다음 날로 미루면 좋을 텐데…….

이렇게 많은 책을 수없이 출간하면서 따로 출판 기념회를 한 적이 없다. 나의 수고를 내가 칭찬하고 내가 좋아한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이 한 번씩 나오고 나면 순산의 후유증처럼, 딸부자 집에서 또 딸을 출산 할 때의 아픔처럼, 생각이 겹치면서 병이 난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출판 기념회를 안 해줘서 푸닥거리 안 한 것처럼 어지럼증으로 시달리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시간 속에 바쁘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글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작업도 슬럼프가 찾아온다. 몸이 아프면 몸만 아픈 것이 아니다 잠재해있던 우울증이 기승을 부려 사람까지 미워진다. 참말로 알 수 없는 내 성격에 우리 남편은 얼마나 힘 들을까? 여행도 잘 다니고 미우나 고우나 남들의 부러움 사는 책도 잘 나오고 전시장에서 우수상도 받고, 아들도 딸도 다 독립시켜 보채지 않고 남편도 힘들게 안 하고 행복한 나날인데 무엇이 불만인지 자꾸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아이도 아프고 나면 약아진다고 하더니 나도 이제 정신이 좀 든다. 추위를 몹시 겁을 먹는 나는 긴 겨울을 움 추렸다가 갑자기 기지개를 펴려고 하면 꽃샘추위에 떨 듯 몸도 마음도 한 번씩 몸살을 한다. 빨리 가는 봄이 아쉬워 봄을 타는 이 사람, 정상을 눈앞에 두고 찾고 있던 씨앗을 발견했다. 무엇으로 사는가? 땅을 갈면서 마음이 밝아지면서 열정이 다시 살아난다. 일에 길들어진 이 사람, 얼마나 더 가야할까? 얼마큼 더 걸어야 저 산마루에 마음 두고 올까?

 

▲ 정정순 작가 작품 31.8X41cm

 

 

 

얼마큼 더 걸어야
산마루에 마음 두고 올까

수많은 가지마다
노랗게 익은 과실을 바라보며
오늘 시어들은 누구의 열매가 될까

농부가 되어 갈고 씨 뿌리고
자갈도 고르고 풀도 뽑고
채소밭을 가꾸듯 가꾸었는데

사랑 등 뒤로
한 우물 파고
힘들게 걸어온 창작의 길

떫은 감처럼 익어 가는
시와 그림 양손에 들고
정상을 향해 노 저어 가는 길

얼마큼 더 가야할까
얼마큼 더 걸어야 산마루에 마음 두고 올까.
 

 

▲ 예초 정정순 작가

정정순 작가 약력

예원예술대학에서 회화과전공, 이화여자대학원, 홍대대학원수료,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수료,
15권의 개인시집과 16번의 개인전, 200여회의 그룹전, 허난설헌문학상, 일붕문학대상, 한올문학대상,
에피포토문학상, 외 다수의 문학상 수상, 신미술대전 서양화 한국미술대전 입선, 특선, 국제문화예술 대상,
외 다수의 미술상수상 현 사단법인- 한국꽃예술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발전위원,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예원예술종합대학원 지도교수, 국제펜크럽이사, 종로미술협회 이사,
서울시문인협회 이사, 중랑문인협회 회장, 불교문학 발행인 및 회장, ECB사랑의샘터 명예회장,
동방대학원대학교 책임교수 및 학술원부회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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