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어 정성을 눌러 담다’ - 한얼 이호영 도예가
‘흙을 빚어 정성을 눌러 담다’ - 한얼 이호영 도예가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7.03.07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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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한물갔다는 시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라이프스타일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예술도자기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추세였으며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흙을 빚고 물레를 돌린다는 시선이 강했다. 청자나 백자 등 옛것의 재현에 치우치다 보면 모방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면 국적불명이라는 비난이 따르기도 했다.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말하는 이는 많으나 우리 도예문화의 본질을 아는 이가 드물고, 작품의 질적 향상을 외면한 채 요장이 난립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 어 왔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도예가 부활했다는 게 요즘 공예계의 정설이다. 파리를 비롯해 뉴욕, 런던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틀리에가 하나둘 활짝 문을 열고 견습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도예 애호가들은 도예가 ‘손으로 하는 요가’라 말한다.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머리를 비우는 데 이만 한 게 없다는 것. 게다가 테라코타, 사암, 포슬린, 파이앙스 등으로 만든 수작업의 결과물은 아름답기까지 해 공간 연출의 탁월한 팁이 돼주기도 한다.

이호영 도예가

도자기의 역사는 토기에서 도기, 그리고 자기로 이어지는데 토기부터 자기까지 저마다 독자적인 양식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 예술계의 평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고유한 멋을 지키고 전통도자예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얼 이호영 도예가가 바로 그 주인공. “도자기는 대개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하지만 실상 모두 다르다.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며칠 동안 시간들여 만들어진 그릇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다.”며 “공장에서 찍어내는 그릇이 많이 쓰이는 요즘, 사람의 손으로 만든 도자기를 필요로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도예가로써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 방법의 혁신을 통해 ‘분청, 청자 평면 도자’라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 국내 최초로 ‘평면도자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전통 도예를 21세기에 맞게 승화시키며 그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분청, 청자 평면 도자’ 기법은 그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운 도자제조의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도자기는 원료의 확보와 배합, 성형, 조각, 번조에 이르기까지 그 제작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해도 실제로 도자기 제작에 뛰어들기 어렵다. 한 점의 도자기를 빚기 위해서는 오랜 연륜을 필요로 하는데 어느 분야에 있어서든 숙련된 기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미술품을 빚는 일이야말로 심미안은 물론이려니와 자기가 빚어내고자 하는 작품을 자유자재로 연출해 낼 수 있는 고도의 기술과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과 예술적인 면을 함께 구상해야하므로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경력이 부족한 초창기에는 공방을 열어도 운영이 잘 되지 않아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꾸준히 경력을 쌓아 온 사람이 드물다. 이 말은 오히려 경쟁자의 수가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도예는 의외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낼수도 있다. 도예분야 1세대 이현승 선생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접했고 흙으로 무언가를 빚는 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이호영 도예가는 “도자기 하는 사람들에게 불문율처럼 전해오는 옛말이 있다. ‘명작은 당대에서 나오긴 힘들고 최소한 3대가 노력해야 가능하다. 1대는 좋은 흙과 가마를 박아 만들고, 2대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3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빛을 본다’는 것. 그런 측면에서 나는 두 번째 주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내 대형벽면에 평면도자기를 이용해 벽화를 제작하고 있는 이호영 도예가는 세계적인 벽화를 기대하며 제작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해전을 주제로 조성되는 이순신 순국공원은 남해군이 국·도비를 포함한 사업비 280억 원을 투입해 2010년 착공해 오는 4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8만 9468㎡에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20동의 건축물과 6기의 조형·구조물이 들어서며 남해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이곳에서 이호영 도예가는 분청평면도자기 기법으로 노량해전을 묘사한 ‘순국의 벽’을 제작하고 있다.

이호영 도예가는 “까다로운 재료와 공정을 거쳐 장인의 영혼을 불어넣은 도자기는 그 자체로 명품”이라며 “도자예술을 선조들의 작품을 재현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문화로써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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