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끄는 여류작가 10인> 양순열 화백

'사람으로 태어나다'라는 주제로 인간의 꿈, 사랑, 행복, 존재, 욕망 등을 담은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작품을 선보이고 '시간의 바다를 깨우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잘 알려진 여류작가가 양순열 작가이다.
대학과 대학원(효성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해 전통방식에 따라 한지에 지필묵으로 사군자, 실경산수를 섬세하게 그렸다. 특히 야생화를 생생하게 잘 표현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던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그림이 아주 다른 그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림의 재료와 형식, 주제 모두가 그전과는 판이하여 도무지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양 작가는 "많은 사람들과 각기 다른 그들의 생각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혹은 조용한 관계와 직면하곤 한다. 자연을 보며 자연과 함께 살아온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람들의 문제로 가슴을 가득 채워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달라진 환경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 그녀는 캔버스는 물론이고 각종 미디어를 폭넓게 활용해 인간에 대한 관심, 인간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하며 인간의 꿈, 사랑, 행복, 존재, 욕망 등을 표현하고 특히 인물과 그를 둘러싼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그만한 인체들을 소조로 빚거나 나무를 깍아 만든 군상과 같은 설치 작품을 하는가 하면 objet trouve(발견된 사물)로 작업하기도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판이하게 틀린 작업이다. 그녀의 오브제의 작품으로 '아버지'에서 안전모는 '오늘의 한국을 일으킨 모든 아버지의 축약된 이미지'로 '아버지의 의자'는 한시도 앉을 새 없이 일만하다 살다 간 이 땅의 아버지의 리얼리티를 즉물적으로 환기 시키고 있다.
미술평론가인 김윤수 전(前)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 화가가 스스로 익히고 달성한 자기 고유의 표현양식, 각고의 노력 끝에 획득한 자신의 개인양식을 떠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에 가깝지만 그러한 모험은 작가 스스로 내적 필연성에 의한 것일 때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이런 어려운 길을 양순열은 진지하고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양 작가는 "그림세계는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길을 찾아주는 소중한 길잡이입니다. 그림을 통해 미술의 길을 보았고 나의 그림은 성장하여 미술이란 거목을 만났습니다. 현재의 내 미술은 추상의 본질에 왔습니다. 세 분야의 예술과 문학과 철학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구분이 없다 해도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세계미술사에서 추상성을 보여준 미술가는 많지만 추상성의 본질을 보여주기는 기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음에 영혼도 함께 존재함을 느껴갑니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영혼을 미술이라는 비주얼 아트로 보여주려 최선을 다합니다" 고 밝혔다.
1959년 대구 의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구여중, 원화여고를 졸업하고 대구 효성여자대학(현 대구가톨릭대) 동양화전공, 대구 효성여자대학원 동양화전공 하였다. 대구가톨릭대동양화전공강의와 학고재 외 8회 개인전을 열었다. 도서출판 골드선 대표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도서출판 오늘, 2007년), 'SY ART-시간의 가지에 꽃피다'(도서출판 GOLD SUN, 2009년)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작가는 최근 틈틈이 써온 에세이와 작품을 모아 '시간의 바다를 깨우다'라는 대형화집을 출간했다.
국내 미술 시장에 대해서도 그녀는 "세계미술은 걷잡을 수 없도록 빠르게 변화하며 미술품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한국미술계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의 구상미술은 포화상태입니다. 아직 한국 미술에서 추상은 걸음마단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금과 은은 다 같은 보석인데 같은 무게의 은값은 금값의 60분의 1입니다. 추상미술의 본질에 도달할 때 구상미술에서 빛이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미술 시장도 세계 미술시장의 변화에 맞쳐 빠른 물결이 몰아칠 것입니다" 고 말했다.
예술이 이 세상에서 필요한가 생각해볼 때 쇼킹한 것보다 심성, 영혼에 도움을 주고 종교처럼,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펼쳐 보이고 싶다는 양순열 화백은 "지금까지 꾸준히 많이 축적해 왔고, 계속 펼쳐보이고 싶습니다. 해외 우수한 미술관은 다 섭렵했어요. 대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역시 작가는 창작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열병 앓듯 작업에 매진해왔습니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영혼을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큰 바람"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