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 고원 유현병 작가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 고원 유현병 작가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7.06.22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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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화랑이나 옥션의 추이를 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대회화, 즉 서양화가 주류를 이룬다. 서울의 전통적인 화랑가인 인사동은 물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강남의 주요 화랑들 역시 대부분 서양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전문 콜렉터 뿐 아니라 일반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미술과 수요자의 소통이 일방적이고 편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미술계에서 홀대를 받고 있지만, 한국 회화사에서 전통의 본류는 동양화였다. 그 중 문인화는 ‘문인’이라는 시대의 엘리트가 당대의 덕목과 자신의 사상을 회화 형태로 표출한 독특한 양식으로 오랫동안 동양회화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해 왔다.

고대 중국에서 삼절(시, 서, 화)을 근간으로 전개돼 온 문인화는 문인지화, 즉 문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로 역사 속에서 이들 문인이 지녔던 인문주의 발현의 한 산물로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다. 작가의 높은 인격과 사상으로 시적인 분위기 속에 흥취된 상태에서 어떤 화풍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맑은 정신 상태에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한 문인화는 작가의 수양된 인품이 나타나며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그윽하고 청아한 감정이 일어나도록 한다. 형식적으로는 지필묵을 중심으로 한 고유한 조형체계와 내용으로는 독화라는 독특한 감상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조형과 감상체계는 독자적인 안전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타 회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유현병 작가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국내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세계를 경주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다변적인 현대 미술계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정립해 가고 있는 고원 유현병 작가가 그 주인공.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을 쏟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는 유현병 작가가 자신만의 감수성이 담긴 예술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특히 문인화와 선묵화가 혼합된 퓨전 장르를 스스로 개척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미술계 발전에 큰 영향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온고지신'이란 옛것을 이어받아 새것을 발전시킨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되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현병 작가는 정통서예와 문인화를 바탕으로 현대문인화를 개척하고 있는 국내화단의 역량 있는 문인화가로 전통의 방식을 중시하면서도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통찰을 통해 전통회화의 기법을 더욱더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즉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대적인 미적 감수성에 부응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내려고 절치부심 문인화에 매진하고 있다.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문인화의 새로운 가치와 현대미술로서의 생존가능성을 모색해 온 그는 한국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선비정신과 전통 문인화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창작정신을 추구하며 현대인의 시각으로 시대정신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동자승은 작품 속에서 인간의 희로애락, 풍속과 내면세계 등을 전달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북을 치거나 나무에 걸터앉아 기타를 연주하기도 하고, 승복을 풀어헤치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도 한다. 때론 부끄러워하며 어여쁜 소녀를 바라보는 동자의 살아있는 표정은 영락없이 그 나이 때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으로 흔히 생각하는 수행하는 수도승이나 성불한 부처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지그시 감은 두 눈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자의 모습이나 엎드려 간절하게 기원하는 모습, 그리고 항상 곁을 지키며 든든한 벗이 되어주는 강아지의 맑은 눈빛은 먹먹한 애틋함을 주기도 한다.

 

동양미술에는 은유적이고 상념적이며 정적인 요소가 잘 표현돼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으로 화가의 감성과 내면세계를 담아낸 작품이 유통과정을 겪으면서 시장성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돼 최근 미술계에서는 전통미술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대학에서조차 동양화과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우리의 정서가 깊게 배인 학문의 입지가 좁아지고 우리의 것에 대한 가치도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그 뒤를 이어 한국미술을 지키고 이끌었던 화가들은 미술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잘 알지 못한다. “미술의 기본은 그 민족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는 유현병 작가는 “우리 미술이 현실생활에 기반을 둔 역사, 전통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국민의식을 가꾸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창작의 주체자들 또한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매진해야 함은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적 활동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 유현병 작가는 후학 양성과 함께 작품을 활용하여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미 전남교육청 신문에 <역사 속 인물이야기>, <동시로 보는 민속놀이> 등 2개의 삽화를 동시에 2년 이상 꾸준히 진행하며 삽화작가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최근에는 전교생 42명의 작은 학교인 전남 광양 다압초등학교 어린이 시인들이 발간한 ‘나무와 바람 군사’시집 삽화를 작업하는 의미있는 시간도 가졌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어른들에게만 작품을 알릴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신문 지면에 삽화를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아이들에게 문인화가 무엇인지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더불어 문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교육 학습이 되고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내달 초부터 7인의 작가와 함께하는 ‘제주푸른바다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 유현병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문인화를 그릴수록 문인화가 가지는 여백과 선, 오묘한 필묵의 조화에 심취한다는 유 작가는 “하얀 화선지를 펴 놓고 먹을 갈 때 느끼는 그 희열과 빈 화선지 위에 고운 선을 수놓는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문인화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화선지 위에 먹선 하나로 마음을 전달하고자 긋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깨달음을 주고 얻기도 하는 문인화는 마음을 치유하는 미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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